미시감각: 문양의 집

2019 설화문화전 〈미시감각: 문양의 집〉 전시 도록

프로젝트 성격: 전시도록 출판
사이트앤페이지 역할: 기획 및 편집, 취재 및 아티클 작성
디자이너: 둘셋
발행: 아모레퍼시픽
수행시기: 2019

지난여름 이번 전시를 한창 준비하고 있을 때 한 지인이 대뜸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아니, 지금에 와서 장식에 불과한 문양을 전시 주제로 다루는 이유가 뭔가요? 전통문양은 요즘 사람들이 잘 쓰지도 않잖아요.” 이는 오늘날 장식과 문양에 대해 견지하고 있는 보편적 태도이며, 또한 이번 전시의 극복 과제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 지인만이 아니라 우리 대부분이 사실 이런 관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장식은 죄악이다”라는 아돌프 로스의 명제에서 전환점을 맞이한 현대 디자인에서 문양은 불필요한 장식과 동격이며, 피상적인 표면 이미지에 머물고 만다. 그런데 이 문양은 어디에서부터 비롯되었을까? 문양은 문자문명 이전에 인류의 소통을 가능케 한 하나의 언어체계였다. 이는 우리가 소위 ‘기능적’이라고 말하는 정보와 지시 구조를 갖추었으며, 더 나아가 현상 너머로 가려졌던 초월적 세계에 대한 숭배와 동경, 그리고 기원이라는 상징체계를 이루었다. 문양은 인간의 본질적 내면세계가 현실과 마주하는 그 경계에서 자라나고 발전하였다. 인류의 문자문명 이후 문양의 역할이 달라졌다 해도 여전히 특정한 시대와 지역의 고유성을 담는 창조적 산물이다. 우리가 이 같은 문양을 장식이라고 말하고 마는 것은 어쩌면 모더니즘의 균질한 백색표면에 매료된 최근 100년간의 일이다. 그러니 잃어버린 우리의 문양 감각을 다시 회복하는 일이 허황된 일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미 생활과 동떨어져 일부 공예와 예술에 한정되어 박물관과 미술관에 갇힌 문양들을 어떻게 다시 우리 곁으로 소환할 수 있을까? 이번 전시의 출발점에서 갖게 된 가장 큰 고민이었고, 우리는 문양의 ‘생활감’을 다시 보여줄 새로운 공간적 형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모든 일상적 공간의 출발점이자 회귀점인 ‘집’ 속에서 문양을 다시 해석하고 변주해 가기로 했다. 오늘날 우리의 도시는 모더니즘의 항성과 자장 속에 놓인 듯 보이지만 가까이 들어가 세부를 살피면 문양들은 생활 곳곳에서 결부되고 자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전시의 큰 방향성을 다음과 같이 다섯 가지로 먼저 정리했다. 첫 번째 ‘발견과 재발견’은 전통문양의 발굴을 넘어 그 현대적 가치를 창조하겠다는 의지이고, 두 번째 ‘패턴 속의 공간, 공간 속의 패턴’은 문양의 평면성을 공간으로 번안하고, 여기에 시간성을 녹이려는 접근이다. 세 번째는 전시명과 직결된 ‘미시와 거시 사이’로, 스케일에 따른 문양의 색다른 변주 방식을 탐구하겠다는 것이다. 네 번째는 의식주라는 생활사 전반에 스며든 문양의 보편성을 찾겠다는 측면에서 ‘옷, 음식 그리고 방’을 내세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로 문양이야말로 ‘장인정신의 예술적 발현’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알리고 싶었다.
공간으로 구현된 〈미시감각: 문양의 집〉의 진정한 가치는 전통문양이 갖는 다양한 중첩의 조화 그리고 그것들이 연출하는 의외성을 다양한 감각적 스케일로 맞이하는 데 있다. 숨겨진 의도와 문제의식을 하나하나 독해해야 하는 전시가 아니라 일단 우리의 신체와 감각으로 느끼며 받아들이면 된다. 그래서 아티스트보다는 현재의 일상을 구성하는 건축, 공간기획, 인테리어, 패브릭, 패션, 영상, 그래픽디자인 등의 여덟 명의 작가가 참여한 것이다. 리빙룸, 다이닝룸, 베드룸, 파우더룸 그리고 라이브러리까지 참여 작가들은 다섯 공간의 기능과 상징체계를 바탕으로 전통문양을 사용해 삶의 풍경을 감각적으로 재구축하였다.
이번 전시에서 ‘미시감각’은 사실 중의적 의미를 갖는다. ‘작게 봄’을 뜻하는 ‘미시감각(微視感覺)’ 외에 내가 전시명으로 삼고 싶었던 의미는 ‘미시감각(未視感閣)’이었다. 데자뷰를 뜻하는 기시감의 반대말인 미시감(未視感)은 ‘평소 익숙했던 것들이 갑자기 생소하게 느껴지는 현상’을 말한다. 그러니 이 문양의 집[閣]을 통해 우리가 늘 알고 있던 전통문양의 모습 새로운 자태와 풍경으로 느껴지길 기대한다.

글 박성진(전시기획자)